현장소식

아프리카에서 온 카드

2019.06.24 195

세상에 홀로 남겨진 청년들을 위하여

매일 아침 모두가 신나는 노래와 춤으로 시작되는 일터
출근길이 하루 중 그 어떤 시간보다도 기대되는 일터

그런 일터를 상상해 보셨나요?

이 곳은 바로 르완다 키갈리 지역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카드 (Cards From Africa, 이하 CfA)’
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이들은 이토록 자신의 일터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일까요?

#1 세상에 홀로 남겨진 청년들에게’기회’와 ‘희망’이 된 일터

‘아프리카에서 온 카드’ 사업은 1994년 *르완다 대학살로 가족과 부모를 잃은 젊은 청년들을 돕고자 시작된 ‘생계 자립’ 프로젝트입니다. 카드를 직접 만들어 판매한 수익금으로 청년들이 자신은 물론 가족들을 부양하고, 병원비와 교육 등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 르완다 대학살: 1994년 발생한 르완다의 후투족과 투치족 간의 종족 전쟁으로, 인구의 85%를 차지하는 후투족 강경파가 100여 일 동안 인구의 14%인 투치족과 후투족 온건파 등 전체 인구의 10%에 달하는 약 80만 명을 학살한 사건

이 사업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은 폐지를 직접 가공하여 재활용 종이로 카드를 만드는데 있습니다. 사업의 수익금으로 ‘가난’을 극복할 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업이기도 하지요.

CfA와 옥스팜의 인연은 바로 이 예쁜 ‘카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48년 전 세계 최초 채러티샵을 연 옥스팜은 중고 물품은 물론 전 세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직접 생산하는 ‘공정무역’ 제품들만을 엄선하여 판매하고, 모든 수익금은 100% 전 세계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해왔습니다.
실제로 2017년 옥스팜 크리스마스 카드 판매 결과, 방글라데시에 깨끗한 식수와 위생을 3년간 지원할 수 있는 규모의 큰 기금이 모이기도 했습니다.
옥스팜 영국 ‘온라인샵’ 의 베스트 아이템중 하나가 바로 ‘아프리카에서 온 카드’에서 만들어지는 카드입니다.

#2 고아였던 나를 엄마와 같이 품어준 일터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CfA) 관리자 아타나시에(Athanasie, 37) 이야기

대학살로 부모님 을 모두 잃은 후 가족의 품이 그리웠던 저는 늘 대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정을 꾸려 살아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겨운 것이 현실이었으니까요. 부모님을 여읜 직 후, 어린 나이였지만 길에서 설탕과 소금을 팔아 매일 근근히 살았습니다.

1994년 대학살 당시 저는 13살이었습니다. 그날도 여느 평소와 다르지 않게 소들과 함께 들판에서 뛰놀다가 마을로 돌아왔는데, 수 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제 부모님이 총에 맞았고 절대 집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말을 주민들에게 들었습니다. 사방에 시체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수 많은 무리 속에 섞여 저 역시 무작정 뛰었습니다. 그저 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안전한 캠프에 이르기 전까지도 총격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어떻게 살아 남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곳 CfA에 오게 된 것은 11년 전인 25살 때였습니다. 저는 늘 혼자인 것이 익숙했기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습니다. 말 수도 적었고, 마치 큰 성벽 안에 저를 꽁꽁 숨기듯 모든 것을 경계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서 일하면서부터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고아인 저를 따뜻하게 맞아준 분을 만났습니다.
에스더(Esther,70)가 있어 저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삶을 다시 사랑할 수 있음을 늘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결혼식때도 부모님 대신 함께 해주셨습니다.”

처음 이곳에서 배운 것은 폐지를 재활용 종이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카드를 디자인하는 방법도 차근히 배워나갔습니다. 지금은 관리자 및 캐셔로 일하고 있습니다. 꽤나 큰 책임을 맡고 있죠?
제가 평범한 삶을 누리며 누군가의 사랑받는‘아내’가 되어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될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이들을 매일 학교에 보낼 수 있을 만큼 돈을 벌고 있다니요! 운전기사인 제 남편과 저는 평생 살아갈 집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저축도 하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가 꿈만 같습니다.

#3 행복으로 향하는 오작교가 되어준 기적의 카드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CfA) 관리자 레이첼(Rachel, 31) 이야기

저는 11살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상점을 운영하시던 아버지는 제가 여섯살때 간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1994년 르완다 대학살이 발생한지 3년 후, 어머니는 에이즈 감염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르완다 대학살이 일어난 당시 저는 겨우 8살이었습니다. 후투족 아버지와 투치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어머니가 후투족 군인과 재혼을 하시면서 다행히 표적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대학살이 일어나던 그 날, 어머니는 제게 절대 밖으로 나가서는 안된다고 당부했습니다. 집 밖에서 들리는 소리는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모든 투치족을 죽여라, 그들은 바퀴벌레 같은 존재들이다!”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무리 귀를 막아도 비명과 총소리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왜 서로 싸워야하는지
저는 당시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저희 어머니가 부모를 잃고 공포 속에 헤매고 있는 저와 비슷한 또래의 투치족 어린 소년을 집에 숨겨주시던 기억이 납니다. 하루는 한 남자가 땅을 파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내 불도저가 수많은 사체를 구덩이 속으로 묻어버렸습니다. 그날의 충격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마저 여읜 후 저는 가장 나이가 많았기에 동생들을 모두 돌봐야 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35kg이나 되는 짐을 머리에 이고 4시간을 걸어 시장에 나가 토마토를 팔았습니다. 그렇게 해도 한 달에 버는 돈으로는 식량을 사기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굶기가 일쑤였습니다.

제가 17살이 되던 해, 이곳 “아프리카에서 온 카드(Cards From Africa)’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폐지로 재활용 용지를 만드는 일부터 카드를 자르고 디자인하는 일까지 차근히 배워나갔습니다. 지금은 어엿한 ‘관리자’로 일하며, 저와 같은 누군가가 이 곳에서 하나둘씩 배우고 성장해나가는 것을 돕고 있습니다.

카드를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각기 다른 배경과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저처럼 부모가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이곳에 오면 미래를 꿈꾸고 실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카드를 만들어 수입을 창출할 뿐 아니라, 배운 기술로 이곳을 나가 또 다른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평생 이 일터에 머물고 싶지만, 최대 5년까지만 일할 수 있습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세 아들과 두 딸들이 따뜻하게 지낼 집을 구하기 위해 이 곳에서 번 돈을 대부분 저축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만해도 음식을 살 돈이 없어 굶기가 일쑤였는데, 지금은 저 자신 뿐 아니라 가족들도 부양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일을 시작하기전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하루 하루가 그리고 이 일자리가
진정한 ‘기적’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카드는 두 기린이 함께 있는 발렌타인 데이 카드입니다. 왠지 이 카드는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라면 어떤 상황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거든요. 제 남편에게 이 카드를 직접 만들어 준 적도 있습니다. 평소보다 더 큰 사이즈로 말이죠! 옥스팜이 우리의 카드를 인정하고 지속적으로 주문해줘서 정말 기쁩니다. 우리가 만든 카드를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으로 향하는 오작교’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