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소식

얼굴을 밝힐 수 없는 시리아 난민 소녀 이야기

2015.09.16 666
레바논에 사는 시리아 난민 소녀, 리마(Reema)의 편지


사랑하는 나의 조국, 시리아야

막상 연필을 드니,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써야 할 지 모르겠다.
너를 떠나오기 전 내가 사랑했던 학교에 대해 써야 하나,
아니면 내가 살던 집에 대해 써야 하나?

학교야, 나는 언제쯤 내 가방을 들고 너에게 달려갈 수 있을까?
내가 다니던 학교는 이제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어.
학생들도 없어.
수업 종소리도 이젠 들리지 않아.
무너져 내린 건물 잔재와 돌무더기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

이제 더 이상 볼 수도, 살 수도 없는 우리 집에 대해 써야 하나?

아니면 비록 지금은 폐허의 잔재만 남아있지만, 늘 예쁘게 피어있었던 꽃들에 대해 써야 하나?

내가 사랑하는 나의 보금자리 시리아야.
언젠가 내가 너에게 돌아갈 날이 오겠지?
나는 꿈이 많았었는데. 이제는 그것들 중 어떤 꿈도 이룰 수 없게 되었어.

이제 나의 유일한 꿈은…하루빨리 너에게 달려가 자유롭게 사는 거야.

시리아, 내가 사랑하는 시리아야.
네가 너무나 그립고, 보고싶구나.


-리마가


오늘 저는 한 소녀를 만났습니다. 그 소녀는 저를 만나자마자 절대 얼굴을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시리아로 돌아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제 사진이 찍히지 않았으면 해요.. 다시 시리아로 돌아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무서워요.”

소녀와 나누었던 대화를 지금 제가 모두 말한다면 아마 누군가는 지어낸 이야기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녀는 곧 12살이 됩니다.
레바논의 다 허물어져가는 건물 1층의 작은 공간에 살고 있습니다.
창문도 없는 이 곳 주변에는 온갖 돌무더기와 콘크리트 조각들이 쌓여 있습니다.
그 어떤 안락함도 없습니다.
이곳에서 소녀는 부모님과 네 명의 자매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폭격이 닥쳤을 때 저는 학교에 있었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몇몇 친구들이 세상을 떠났어요. 우리 모두 그 자리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쳤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리아를 떠나야 했어요. 정말 두려웠습니다. 학교가 폭격을 당할 때 저는 온 세상이 다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어요 … 제 친구가 보고싶어요.. 우리 선생님들도, 내가 수업을 듣던 교실도, 영어 수업시간도, 아라비아어 수업도, 음악수업시간까지.. 모든게 그리워요. 저는 지금 그저 답답한 이곳에서 매일 앉아있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소녀의 엄마가 말합니다.“아이가 이곳에 갇혀 늘 울곤해요. 그치만 길가에 아이들을 나가게 할 순 없어요. 혹여나 난민이라는 이유로 다른 아이들과 부딪쳐 문제가 생겨서는 안되니까요. 그리고 나갔다가 어딘가 다치거나 넘어질까 무서워요. 다치고 아파도 치료해줄 돈이 없으니까요.”

소녀가 말을 이어갔습니다. “연필도, 종이도 없어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요. 매일 아침, 저는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보며 울곤 해요. 왜 나는 학교에 갈수가 없는걸까? 언제쯤 시리아로 돌아가 나와 함게했던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제는 그녀의 ’집’이라 불리는 작은 공간을 돌아보며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이곳에서 살기 위해 손으로 직접 모래들과 돌무더기들을 치워야 했어요. 쥐도 엄청 많아요. 쥐들이 병균을 자꾸 옮겨서 종종 아프곤 해요.”

수년전 시리아에 있을 때 그녀의 집은 폭격으로 모두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이후 소녀와 소녀의 가족들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녀야 했습니다.
내전이 더 심해질 때마다 또 옮겨 가야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에서 세 달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소녀는 반에서 1등을 곧 잘하는 우수한 학생이었습니다.
학교 수업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사랑했던 많은 친구들에 대해, 그리고 이제는 세상을 떠난 그리운 수많은 친구들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학교를 정말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내 친구들에게 어떤 일이 닥쳤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가 없어요. 레바논에 있는지 혹은 시리아에 여전히 남아있는지도 알 길이 없어요.”



요리를 할 작은 공간을 찾자, 소녀가 미안하다는 듯 쳐다보며 사과를 했습니다.

“미안해요. 영어로 부엌을 뭐라고 하는지 까먹었어요.”

이후 함께 있는 시간 동안 그녀는 계속해서 제게 사과를 했습니다.

“학교를 못 간지 너무 오래되어서 많이 까먹었어요. 선생님들은 다른 학교 갈 때면 줄곧 저를 함께 데려가시곤 했어요. 저희 학교 대표로요. 반에서도 영어 책을 읽으며 아이들에게 스스로 영어를 가르쳐주곤 했었는데…”

그렇게 똑똑하고 성실했던 소녀가 막막하고 두려운 현실 속에 불안해하고 의기소침해진 것을 함께 있는 내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떠나려는데, 소녀가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살던 곳을 정말 좋아했어요. 그리고 저의 학교도요. 저는 친구들을 정말 사랑했었고, 제가 선생님들도 너무 소중했어요.”

그리고 소녀가 맺은 마지막 말은
“선생님, 또 오실 수 있나요?”

이 소녀의 이름은 리마(Reema)입니다.
봄에 피는 꽃의 향기를 의미하지요.

리마의 가족은 옥스팜의 현금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리마네 가족은 앞으로 두 달간 주거비를 충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집을 잃은 채 떠도는 수 천 만 명의 시리아 난민,
지금도 시리아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합니다

시리아 내전은 20만 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37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직업이나 농작물, 가축 등 삶의 터전을 잃은 채 레바논, 요르단 등의 이웃나라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시리아에만 10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물과 음식 그리고 피난처 등의 긴급구호를 절실히 필요로하는 상황입니다. 옥스팜은 긴급구호와 더불어 내전으로 피해 입은 수십만 명의 삶을 장기적으로 지원할 계획입니다.

시리아는 옥스팜 긴급구호의 가장 우선순위에 있습니다. 옥스팜은 시리아에 있는 60만 명과 레바논과 요르단의 난민들 33만 명, 총 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에게 식수지원, 화장실 설치 및 위생지원, 보건증진 프로그램과 의류지원 등을 통하여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더불어 임시거처지원, 소량의 금전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옥스팜은 계속해서 지원 범위를 넓혀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