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소식

[시리아 분쟁 9년] 난민에게 남은 전쟁의 흉터를 만나다

2020.03.13 6092
레바논에 위치한 한 난민캠프 (출처: Adrian Hartrick/Oxfam)
시리아 위기가 시작된 지 벌써 9년이 지났습니다. 2011년 3월 시작된 시리아 분쟁은 지금까지 시리아 내 수십만의 목숨을 앗아가고 수백만 명의 난민과 이재민을 낳았습니다. 폭격으로 주택과 학교는 파괴되었고, 깨끗한 물과 화장실은 턱없이 부족하며,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할 방법을 쉽게 찾지 못해 삶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9년이 흐른 지금도 시리아 총 인구 2/3 이상인 1,350만 명이 여전히 인도주의적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옥스팜은 시리아 분쟁 9주년을 맞아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에 거주 중인 현지 난민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전쟁이 어떤 모습으로 이들의 삶을 바꿔놓았으며, 그들은 어떤 환경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여기 각자 다른 나라에서 다른 모습으로 거주 중인 시리아 난민 세 명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평범한 일상을 잃은 것도 슬픈데, 난민캠프에서 자라야 하는 6살짜리 막내 생각만 하면 마음이 찢어집니다”

요르단에 거주하는 시리아 난민 자하라(Zahra) (출처: Oxfam/Nesma al-Nsour)
요르단 자타리 난민캠프에서 지내고 있는 자하라(Zahra)는 과거에 누렸던 일상의 기쁨을 잃어버린지 오래입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차 한잔을 마시며 일기를 쓰고, 마당 정원에서 꽃냄새를 맡으며 보낸 여가시간은 아득한 기억으로만 남아있습니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함께 드라이브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함께 드라이브를 가던 친구들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전쟁 때문에 어머니와 남편, 친구들까지 모두 잃었습니다. 매우 참혹했죠.
안전한 요르단 국경까지 가기 위해 가지고 있던 귀금속을 모두 팔아 운전기사에게 지불했습니다.
난민캠프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곳엔 다른 시리아 많은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모두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 요르단 자타리 난민캠프에서 지내고 있는 시리아 난민 자하라(Zahra)

자하라에게는 6살짜리 막내아들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겪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제한적인 난민캠프에서의 삶, 하지만 난민캠프에서 나고 자란 아들에게는 익숙해 보입니다. 자하라는 조국과 더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한 채 자라나는 아들의 삶이 걱정됩니다.

“막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온 삶의 배경은 난민캠프였습니다.
머리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때면 아이는 반응을 보입니다. 제가 이전에 살아가던 삶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 요르단 자타리 난민캠프에서 지내고 있는 시리아 난민 자하라(Zahra)

“폭격을 피해 레바논으로 도망 왔지만 이곳에서도 살아남기는 어렵습니다”

레바논에 거주하는 시리아 난민 바드리아(Badria) (출처: Oxfam/Sahar el-Bachir)
바드리아(Badria)는 폭격을 피해 가족들과 레바논으로 피난했습니다. 한 달만 임시거처에서 생활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8년이 더 흘렀습니다. 바드리아 가족이 레바논으로 이사하게 된 이유에는 남편의 강력한 설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남편은 이사 후 몇 달 뒤 셋째 부인을 데리고 도망갔습니다. 현재 바드리아는 남편의 첫번째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지냅니다.

“이전에 살던 집이 그립습니다. 작았지만 안전했고, 지금처럼 전기나 물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죠.
이사 후 처음 몇 달은 올리브를 수확해 생계를 유지하며 삶의 전환을 맞이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셋째 부인을 데리고 우릴 떠난 뒤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이곳에서 여성 가장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저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너무나 힘듭니다.
막내는 길거리에서 냅킨과 껌을 팔아 돈을 법니다.”

- 레바논에 거주하는 시리아 난민 바드리아(Badria)

열두 살이었던 바드리아의 한 자녀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학교를 중퇴하고 식당에 취직했습니다. 다른 형제자매의 삶도 모두 비슷합니다. 바드리아에게 지난 9년은 탈진 그 자체입니다.

“우리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좁은 공간임에도 지낼 집이 있다는 사실에 저는 감사를 느낍니다.
시리아의 많은 이들은 집없이 지내거나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희 집도 무너졌습니다.
친구와 가족들은 고향을 떠났습니다. 이게 우리의 지난 9년입니다. 우리는 매우 지쳤습니다.”

- 레바논에 거주하는 시리아 난민 바드리아(Badria)

“간신히 살아남았던 굶주린 지난 날을 보내고 이제 벌들에 희망을 걸어봅니다”

새로운 생계를 찾은 시리아 난민 아흐마드(Ahmad) (출처: Oxfam/Sahar el-Bachir)
아흐마드(Ahmad)는 시리아에서 대장장이로 일했습니다. 가족들 또한 가게를 운영했기에, 경제적으로 꽤나 여유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시리아 분쟁으로 마을이 포위되며 직업을 잃고 당장 한 끼의 음식을 구하러 다니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식료품점의 진열대가 비어가며 음식 가격은 끝없이 올랐습니다.
생존을 위해 우리 뿐만 아니라 많은 가족들이 가진 것을 모두 팔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구하러 다니며 다양한 일을 시도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행상까지 했고, 아침 일찍 일어나 풀을 모아 끼니를 때워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 시리아에 거주하는 아흐마드(Ahmad)

하지만 굶주림이 고통의 끝은 아니었습니다. 2016년, 아흐마드는 정체모를 폭발물의 파편에 맞아 2주가 넘도록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그가 살아있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동안 긴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대장장이로서 좋은 수입을 얻다가, 행상을 하고, 죽을 위기를 넘기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뜻밖의 계기로 양봉을 배우게 되어 불확실한 삶 속에서도 작지만 감사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 시리아에 거주하는 아흐마드(Ahmad)

시리아에 다시 봄이 오는 그 날을 위해, 옥스팜은 오늘도 함께합니다

 With Syria 캠페인 제스처를 취하는 자타리 캠프 어린이들 (출처: Adeline Guerra/Oxfam)
옥스팜은 2013년 6월부터 시리아 위기로 피해를 입은 현지 주민들을 돕고 있습니다. 깨끗하고 안전한 물이 필요한 시리아 전역 12개 주에 물을 제공하며,
수원과 수로를 복구하고, 우물과 수도를 설치했습니다. 위생키트 배부, 음식, 생활용품 등 물자지원으로 주민들의 생활에 필요를 채웠습니다.

옥스팜은 작년에만 시리아 인구 120만 명 이상을 도왔습니다. 레바논과 요르단 등지에서도 약 30만 명의 시리아 분쟁 피해자를 돕고 그들의 지속가능한 생계를 위해 힘써 왔습니다.

하지만 시리아 몇몇 지역 내 군사 범죄가 증가하고 있어 여전히 현지는 매우 불안정합니다. 주택, 학교, 병원 등 사회시설이 파괴된 지역사회는 매우 열악한 상황이며, 주민들을 위한 공중보건서비스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시리아 인구의 80%가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인도주의적 지원을 건네기에 위험한 지역입니다.

옥스팜은 시리아 내외부에서 난민들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해 캠페인 및 옹호활동을 진행해 왔습니다. 시리아 난민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With Syria’ 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정책을 바꾸어 나가고 시리아에 평화가 오는 날을 전 세계 시민들과 함께 고대하고 있습니다.



시리아 난민들이 안전한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함께해주세요.


 시리아에 다시 봄이 오는 날을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