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소식

‘Born to be Married’ 남수단 위기의 십대 소녀들

2019.03.07 11781

한창 친구들과 뛰어 다니며 수다 떨고, 꿈꾸는 것을 좋아할 나이 10살. 그런 소녀들에게 부모들이 강요하는 것은 늦잠을 자지 말라는 것도, 공부를 하라는 것도 아닌 바로 ‘결혼’입니다. 하지만 결혼은 어린 소녀들이 하는 ‘놀이’가 아닙니다. 몸도 마음도 준비되지 않은 어린 소녀들에게 결혼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일입니다.

최근 옥스팜의 연구에 따르면, 남수단 니알(Nyal)지역의 강제 조혼 비율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이 지역은 지난 남수단 5년간의 내전 중 가장 격렬한 전투가 있었던 곳들과 가깝습니다. 니알 지역의 소녀 71%는 18세 전에 결혼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는 내전이 일어나기 전 비율이었던 45%보다도 월등히 높은 수치입니다. 특히 이곳 여성과 소녀 중 10%는 15세가 채 되기도 전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내전 전과 비교해 왜 강제 조혼의 비율이 높아진 걸까요? 정확한 결론을 낼 수는 없지만, 니알 지역이 지녔던 문화, 사회, 경제적인 요소들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현상이 점점 국가적인 양상으로 번지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즉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이러한 강제 결혼 및 조혼의 높은 수치는 결국 여성과 소녀들이 직면하는 인권 문제와 연결됩니다. 여성과 소녀들은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고, 삶 전체에 고통을 남길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 내전 중 소녀들의 성폭행 피해 사례는 상상 그 이상의 수치이며, 납치되거나 강제 성노예 생활을 강요받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또 어린 나이에 결혼한 소녀 대부분이 가정 폭력과 성 기반 폭력에 쉽게 노출되고 있었습니다.

뉴욕타임즈 기사 캡처, Ashraf Shazly/Agence France-Presse, Getty Images/ 2018.06.27

작년 9월, 남수단 지도자들은 평화협상에 서명을 하면서, 전투의 수는 눈에 띄게 감소했지만 높은 성폭행 비율은 그대로 입니다. 지도자들은 고위직 관료 직급 35%에 여성들을 임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정치 개혁의 과도기인 이 시기에 관련 부처에서 여성과 소녀들을 위한 목소리를 반영하기에는 여전히 적은 비율입니다.

강제 조혼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충격

소녀들의 강제 조혼은 충격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어린 소녀들은 임신과 출산 중 사망에 이르거나 합병증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남수단은 전 세계에서 산모 사망률이 가장 높습니다. 또 조혼으로 인해 남수단 소녀들 76%가 학교를 그만둡니다. 하지만 결혼 후 생활이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니알 지역의 기혼 여성 200명 중 88%가 남편으로부터 신체적인 폭력을, 84%는 성폭력을 목격 또는 경험했다고 말했습니다. 강제로 이루어진 결혼 이후에도 소녀들은 힘겨운 매일을 보냅니다.

옥스팜은 현장 인터뷰 중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많은 사춘기 소녀들이 부모로부터 결혼을 강요받을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학교에서 높은 성적을 유지하려 애쓴다는 점입니다. 높은 성적을 받으면 가족들이 상급학교 진학을 지지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반면 많은 남수단의 소녀들은 강제 조혼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으로 자살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소녀들이 조혼의 굴레에 빠지는 이유, 빈곤과 굶주림

옥스팜은 남수단 니알 지역에서 집중 인터뷰를 통해, 지난 5년간의 내전이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주민 대부분이 2013년 시작된 내전 이후 삶이 끔찍하게 변했다고 답했습니다. 그중 충격적인 변화는 전쟁으로 인해 빈곤과 식량 위기를 겪게 됐고, 부모들은 음식을 사기 위해 돈을 받으며 어린 딸을 결혼시킨다는 점입니다. 이는 현재 식량위기가 심각한 내전 지역, 예멘에서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특히 전쟁으로 집을 잃은 소녀들의 상당수는 18세 전에 조혼을 강요받습니다. 인프라와 법 등 모든 사회적 규율과 시스템이 무너진 상황 속에서 전통과 관습을 더 중요시하면서 조혼을 선호하기도 하고, 성폭행의 위험이 도사리는 무법 속에서 어린 딸을 빨리 결혼시키려는 이유도 있습니다.

지난해 평화 협상 이후 남수단에는 희망이 찾아왔지만, 여전히 소녀들에게 찾아오는 위험 속엔 그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평화 협상을 통해 지도자들은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들어가겠다 약속했지만,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녀들과 여성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옥스팜은 남수단 정부와 국제사회에 정책결정 과정을 포함한 다양한 남수단 재건 프로그램 속에 여성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이 적용되기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아야 합니다. 당장의 전쟁을 멈추는 평화를 넘어, 그 이후의 재건 과정에서 모든 구성원들이 동등한 기회를 얻고,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지속가능한 평화’가 구상되어야 합니다.

옥스팜은 2019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해 남수단 소녀들의 조혼 및 강제결혼의 실태를 조사한 보고서 [Born to be married]를 발표했습니다. 이를 통해 지난 5년간의 전쟁 속에서 소녀들에겐 의식주 문제를 넘어 또 어떤 고민과 고통들이 찾아왔는지 국제사회에 전할 수 있었습니다.

소녀들의 조혼 문제는 남수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소녀들의 고통스러운 매일’은 분쟁과 재난지역, 빈곤지역 등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입니다.